일본은 조선문화의 파괴자, 략탈자(4)

Date: 07/12/2018 | Source: Rodong Sinmun (Kr)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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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을 모조리 도굴파괴한 날강도무리

일제의 문화재파괴략탈에서 첫 대상으로 된것은 우리 나라 각지에 분포되여있던 각이한 시대의 고분들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날 조선을 강점한 일제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의 고분들을 모조리 파헤치고 수많은 고적과 유물을 파괴략탈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선조들의 무덤을 알뜰히 보호관리하고 해마다 민속명절들을 계기로 여러가지 제사도 정성들여 지내며 조상들에 대한 숭배에 최대의 정성을 기울였다.

일제가 우리 나라에 침략의 발을 들여놓던 19세기 후반기까지만 하여도 근 5 000년의 력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조릉들과 고분들이 전조선지역에 널리 퍼져있었다.

조선민족이 대대로 신성시하고 훌륭히 보존관리하여오던 력대 왕조들의 고분들은 일제침략자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무참히 도굴파괴당하였다.

고분들에 대한 일제의 도굴파괴행위는 청일전쟁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감행되였으며 이것은 《법》적담보밑에 《합법》적인 성격을 띠였다.

이렇게 시작된 일제의 고분도굴파괴행위는 로일전쟁과 그 이후시기에 더욱 횡포하게 감행되였다.

당시의 만행에 대하여 일본에서 출판된 어느 한 도서에는 이렇게 서술되여있다.

《1904년부터 2~3년동안이라고 하면 마침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터닦기가 진행되고있던 때인데 이 기간에 개성과 강화도, 해주 등에서 고려의 왕릉을 비롯한 약 2 000기의 분묘에 대한 대도굴이 행하여졌다.일본군대는 백주에 공공연하게 다이나마이트까지 써서 10만점이 넘는 청자와 그밖의 부장품들을 략탈하였다.》

고려 31대왕인 경효왕의 릉은 고려왕릉들가운데서 잘 보존되여있던 무덤일뿐아니라 고려석조기술연구에 있어서나 고려시기의 묘제연구에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고려시기 왕릉들중에서 손꼽히는 무덤의 하나였다.

당시 헌병, 경찰 등 수십명으로 무리를 이룬 일제의 대도굴단은 무덤의 째임새에 대하여 무식하여 출입구를 찾지 못했던 나머지 무덤무지의 북쪽부분을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고 그안에 들어가 달구지 10대분에 해당되는 유물들을 략탈해갔다.이런 식으로 놈들은 전조선지역에 널리 분포되여있던 수많은 왕릉들과 고분들을 도굴파괴하였다.

락랑지구를 중심으로 한 평양일대의 락랑구역무덤떼와 오늘의 중국동북지방과 평안도지방, 황해도지방 등에 퍼져있던 고구려고분들, 공주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분포되여있던 백제지역의 고분들, 경주일대의 신라고분과 성주, 고령, 창녕일대의 가야고분들, 개성일대의 고려고분 등에 대한 놈들의 마수는 어디라 할것없이 뻗치였다.

놈들의 행위는 비단 도굴파괴에만 그치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고려자기경매전시회들이 자주 진행되였는데 이것은 고려고분에 대한 도굴을 더욱 사촉하게 하였다.

이러한 도굴행위들로 하여 일제의 《통감》통치시기와 《총독》통치의 첫 시기인 1910년대에 벌써 고려고분들은 완전히 파헤쳐져 페허로 되다싶이 되였다.

선조의 무덤을 공공연히 파헤치고 백주에 유물을 략탈하는 일제침략자들의 만행에 대하여 조선인민은 결연히 항거해나섰다.

당시 강화군 량도면 릉내리의 한 고려릉묘를 도굴하여 많은 유물을 략탈해가지고 돌아가던 일제침략자들이 의병들에 의해 모두 몰살당한것이 그 단적인 실례로 된다.

그러나 조선인민의 항거에도 불구하고 일제침략자들은 해방전까지 우리 나라에서 한개의 고분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도굴파괴하였다.

해방전 일제가 감행한 고분도굴파괴행위는 조선민족의 넋과 정신을 짓밟고 력사적전통을 끊어버리려고 한 야만적인 행위이며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는 극악한 반인륜적범죄행위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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