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종소리는 이렇게 높이 울려간다 -평양을 떠나 려도방어대의 학교 교원으로 자원진출한 리정화동무와 그의 성장에 바쳐진 사랑과 정에 대한 이야기-

Date: 12/02/2019 | Source: DPRK Today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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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2월 12일 《로동신문》

평양을 떠나 려도방어대의 학교 교원으로 자원진출한 리정화동무와 그의 성장에

바쳐진 사랑과 정에 대한 이야기

려도!

그 지명은 이 땅의 누구에게나 결코 생소하지 않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려도방어대를 찾고 또 찾으신 감동깊은 사연들과 더불어 만사람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이 섬에 우리의 주인공이 있다.

동해안전방초소의 자그마한 학교에 배움의 종소리를 더 높이 울려갈 마음을 안고 23살 꽃나이처녀가 정든 평양의 교단을 떠난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교육은 조국과 혁명의 미래를 가꾸는 영예로운 사업이며 가장 책임적이고 보람있는 사업입니다. 교원들이 이것을 깊이 명심하고 참다운 밑거름이 되고 뿌리가 되여 후대교육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당에서 걱정하는 문제, 당이 바라는 일이라면 한몸을 기꺼이 바칠 백옥같은 충정의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외진 섬에서 깨끗한 량심과 무한한 헌신으로 조국의 미래인 후대들을 훌륭히 키워가고있는 리정화동무,

섬마을의 작은 교정에 새겨지는 그의 자욱자욱에는 위대한 령도자의 품속에서 성장한 새 세대 교원혁명가의 고결한 인생관과 함께 누구나 한마음한뜻으로 당의 교육중시사상을 충직하게 받들어가는 우리 사회의 참모습이 비껴있다.

당중앙뜨락과 잇닿은 교정

호기심어린 눈동자들이 처녀교원을 바라보았다.

그 처녀는 대동강구역 릉라소학교에서 려도방어대의 학교로 자원진출한 리정화동무였다.

평양에서 온 선생이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싶다고 모여온 교원들과 학부형들의 기대어린 눈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리정화동무는 출석부를 펼쳤다. 생소한 모습들을 정답게 가슴에 새겨안으며 처녀교원은 매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희망이 무엇입니까?》



리정화동무의 려도에서의 첫 수업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평양과 려도는 달랐다. 릉라소학교의 큰 교실에서 새별처럼 반짝이는 수십쌍의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수업하던 리정화동무에게 있어서 불과 몇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섬마을의 작은 교실은 전혀 새로운 환경이였다.

학생수는 적어도 수업에는 곱절로 품이 들었다. 학생들이 섬에서 나서자라 바다밖에 본것이 없다보니 수업시간에 교감이 잘되지 않았다. 다매체편집물을 보여주며 《여기에 가본적이 있습니까?》, 《이것을 다루어보았습니까?》 하고 물으면 《못 가보았습니다.》, 《못해보았습니다.》라는 대답이 합창하듯 울려나오군 했다.

학생들에게 보다 생동한 표상을 주자면 동화상자료를 많이 리용해야 한다고 본 리정화동무는 릉라소학교와 련계하여 귀중한 자료들을 얻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교재의 내용을 충분히 인식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교육사업에 정열을 쏟으며 리정화동무는 생소하던 섬생활에 차츰 익숙되여갔다. 온밤 잠 못 들게 하던 파도소리도 이제는 자장가처럼 정답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파도가 늘 잔잔하지는 않은 법이다. 흥분과 열정, 긍지와 포부로 가득찼던 리정화동무의 가슴속에 난파도가 덮쳐들었다.

새 학교에서의 첫 겨울방학이 끝나가던 때였다. 수업을 시작할 날이 거의 되여오도록 뭍에 나갔던 한 교원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정이 있어 좀 늦어지는가부다 하며 이제나저제나 기다렸건만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넘도록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어려워도 서로 의지하며 배움의 종소리를 함께 지켜가자고 속삭이던 일들이 돌이켜질수록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듯 한 허전함과 이름 못할 외로움이 갈마들었다. 《우리 선생님은 언제 오십니까?》라고 묻는 어린 학생들의 천진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애써 참았던 눈물의 동뚝이 끝내 터지고야말았다. 학생들이 볼세라 얼른 돌아선 그는 발길이 닿는대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떻게 바다가에 이르렀는지…

차디찬 모래불에 퍼더버리고앉으니 평양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부모님과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어려오고 구역당일군들의 모습도 엇갈려 안겨왔다. 그러느라니 려도로 오기까지의 사연들이 되새겨졌다.

주체103(2014)년 여름 동해안전방초소를 지키고있는 방어대들을 련이어 시찰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텔레비죤화면으로 뵈옵는 리정화동무의 생각은 깊어졌다.

(저 려도방어대의 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시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가.)

려도의 교단에 선 자기의 모습을 그려보니 흥분으로 심장이 높뛰였다. 그는 서둘러 지도첩을 펼쳤다. 점으로 표기된 곳에 또렷이 새겨진 《려도》라는 두 글자가 대뜸 눈에 띄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평양에서 너무도 멀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집을 떠나본적이라고는 농촌지원전투기간뿐이고 바다는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그에게 있어서 륙로로 수백리 그리고 또 풍랑길을 헤쳐야 하는 려도는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문득 갈마든 충동에 자기자신도 흠칫 놀랐다. 선뜻 생각을 돌리려 했으나 왜서인지 잠자리에 누워서도, 학교로 오갈 때에도 지도의 작은 점은 끈질기게 처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날과 달이 흐르던 이듬해 어느날이였다.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서 한 미풍선구자들의 토론을 시청하는 리정화동무의 가슴은 후더워졌다.

수도 평양을 떠나 최전연섬초소의 학교 교원으로 자원진출한 조봄향, 부모없는 아이들을 맡아키우는 강선땅의 《처녀어머니》-장정화…

한명한명의 토론을 눈물속에 들은 그날 리정화동무는 온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동시대 청년들의 아름다운 소행에 감동의 눈물만 흘리고 발걸음을 따라세우지 못한다면 어찌 당의 품속에서 성장한 새 세대 교육자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하는 량심의 호소가 오래동안 갈림길에서 방황해온 그의 마음을 드디여 선택의 길에 세워주었다.

려도로 가겠다는 리정화동무에게 당일군인 아버지는 심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막내딸로 고이 자란 네가 정말 평양을 떠나 살수 있겠니? 장한 결심이라고 하여 절로 지켜지는것이 아니다.》

그날 아버지는 리정화동무와 함께 밤깊도록 평양의 거리를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이 모셔진 만수대언덕에 올랐을 때 아버지는 딸의 손을 꼭 잡고 절절히 당부하였다.

《만수대언덕에서 다진 오늘의 맹세를 언제나 잊지 말거라.》…

파도우에 갈매기가 날아옜다.

리정화동무의 입가에서는 저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평양을 떠나기 전 환송모임에 참가한 수천명 청년들앞에서 불렀던 노래였다.

따뜻한 깃을 찾아 새들은 가도

찬바람부는 길을 처녀는 가네



조국수호의 전초선을 지켜가는 군관의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 경애하는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겠다고 굳은 맹세를 다졌던 그때가 불과 몇달전이였다.

리정화동무는 잠시나마 나약해졌던 마음을 다잡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모래불우에 그의 발자욱이 또렷이 새겨졌다.

(따뜻한 깃을 찾아 날아가는 철새가 아니라 사철 이 바다를 떠나지 않는 저 갈매기처럼 려도와 함께 한생을 살리라.)

꽃피는 봄이 왔다. 리정화동무는 려도에서 처음으로 개학날을 맞이하였다. 1학년생들을 이끌고 12년제꽃대문에 들어서는 그의 얼굴에는 희망과 기쁨이 한껏 어려있었다.

며칠후 교실벽면에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지도일력판이 게시되였다.

《아버지원수님 그리며 5점꽃 피울래요》라는 표제아래 《지금은 어데 계실가?》라는 글이 새겨진 현지지도일력판에 리정화동무가 경애하는 원수님의 혁명활동내용을 정성껏 써나갈 때면 어린 학생들은 목소리를 합치며 한자한자 따라읽었다. 아직은 그 뜻을 다 헤아릴수 없는 철부지들이건만 그들의 마음속에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충정의 뿌리를 깊이 심어주고싶어 리정화동무는 현지지도일력판운영을 정상화해나갔다.

학생들에게 가방을 의자에 거는 습관을 붙여줄 때에도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깊이 새겨주었고 주변의 나무에 올라가 노는 장난꾸러기들을 타이를 때에도 아버지원수님께서 방어대를 시찰하시면서 보아주신 귀중한 나무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학생들의 실력을 높여주기 위해 리정화동무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였다.

그는 릉라소학교에서 성적이 제일 낮은 학급을 맡아 짧은 기간에 학년적으로 가장 우수한 학급으로 만든 실력있는 교원이였지만 자질향상을 위한 사업에서 만족을 몰랐고 교수준비에 부단히 품을 들이였다. 수업시간에 한번 설명해주어 학생들이 리해하지 못하면 두번, 세번 곱씹어 설명을 했고 맨 나중에 리해한 학생이 칠판에 문제를 척척 푸는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군 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평양초등학원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원아들이 글씨를 곱게 쓰는것을 보시고 못내 기뻐하시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학생들의 글씨에 더 각별한 관심을 돌리였다. 한 학생의 글씨를 바로잡아주기 위해 한주일동안이나 그의 집에 찾아다니며 애썼다. 국어수업, 도화공작수업 등을 소학교학생들의 심리에 맞게 할수 있는 교수방법을 탐구하며 피타게 노력하는 과정에 그는 10월8일모범교수자의 영예를 지니였다.

세월은 흘러 엊그제 학교정문에 들어선것만 같은 학급 학생들의 가슴에 붉은넥타이가 펄펄 휘날렸다.

그들과 함께 리정화동무는 방어대에 모셔진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지도표식비주변관리사업을 하는것을 매일 첫 일과로 정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일과를 집행하고는 일지에 자기의 이름을 스스로 적어넣을 때면 학생들은 국어시간에 배운 《들꽃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군 했다. 3학년 학생들이 이렇듯 조용히 걷던 새벽길에 얼마후부터는 온 학교 학생들이 따라나섰다.

리정화동무가 담임한 학생들에게는 류다른 수첩이 생겼다. 표지에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원수님의 현지지도일력》이라는 글이 새겨진 수첩, 선생님이 마련해준 빨간 뚜껑의 그 수첩에 현지지도일력판의 내용들을 또박또박 적으며 학생들은 묻군 하였다.

《선생님, 삼지연은 얼마나 멉니까?》, 《고암-답촌철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리정화동무가 벽에 걸린 조선지도에서 그곳을 찾아주면 학생들은 와- 하고 놀라움이 섞인 탄성을 올리며 또다시 질문의 소나기를 퍼붓군 했다.

《그곳은 평양에서 려도보다 더 멉니까?》, 《아버지원수님께서 우리 려도엔 언제 오십니까?》…

그럴 때면 리정화동무는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의 마음이자 그의 마음이였다. 몸은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있어도 마음은 매일, 매 시각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는 평양으로 달리는 그였다.

지난해 어느날 학교 학생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공화국창건 일흔돐을 맞으며 보내주신 《해바라기》학용품세트를 받아안게 되였다.

원주필, 자, 색종이, 크레용, 연필깎개, 지우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섬마을학생들에게 부족한것이 있을세라 학부형의 심정으로 마련해주신 하나하나의 학용품들을 리정화동무는 무심히 볼수 없었다.

민들레학습장도 섬마을학생들에게 남먼저 안겨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이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오를수록 리정화동무에게는 잊지 못할 평양견학의 나날이 감회깊이 돌이켜졌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섬분교와 최전연지대, 산골학교들에 자원진출한 교원들을 평양으로 불러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 리정화동무는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섬방어대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지 불과 2년밖에 안되는 자기에게 그런 영광이 차례지리라고 어찌 상상조차 할수 있었으랴.

어려운 교육초소에서 한생을 고스란히 바쳐온 머리흰 교원들과 꼭같이 당중앙위원회의 명의로 마련된 성대한 연회에 참가하고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을 때, 경애하는 원수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을 때 외진 곳에 사는 아이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교원들에게 더 극진한 정을 기울여주는 어머니당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으로 눈굽적시던 그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사랑을 또다시 받아안는 행복한 학생들을 바라보며 리정화동무는 다시금 절감하였다. 려도는 결코 평양에서 멀고먼 섬이 아님을.

당중앙뜨락과 잇닿아있는, 우리 원수님의 마음속 제일 가까이에 있는 교정에 서있다는 무한한 긍지, 이 성스러운 교단을 영원히 지켜갈 맹세로 그의 심장은 세차게 높뛰였다.

홀로 걷는 길이 아니다

무릇 인간이 한번 선택한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우기 수도 평양에서 나서자라 스스로 섬방어대의 학교에 인생의 뿌리를 내린 리정화동무에게 있어서 한생토록 자기의 결심을 실천으로 이어간다는것은 참으로 헐치 않은것이다.

아직은 그가 려도의 학생들과 인연을 맺은지 3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을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이 나라의 한끝-동해의 외진 섬에 묵묵히 새겨온 소중한 한자욱한자욱에서 앞으로 변함없이 이어갈 30년 아니 한생의 무수한 발자취를 본다. 그는 그 길을 홀로 걷지 않기때문이다.

지금도 리정화동무는 평양을 떠나기 전 릉라소학교의 한 교실에 펼쳐졌던 광경을 잊지 못하고있다.

정성껏 포장한 지함들이 벽면들을 꽉 채우고있었다. 마치 해마다 구역에서 성황리에 진행되군 하던 교육지원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의아해하는 리정화동무에게 대동강구역당위원회 일군은 웃으며 말하였다.

《섬에서 생활하자면 필요한게 많을겁니다. 그저 우리모두의 마음뿐이예요.》

그제서야 영문을 알게 된 리정화동무는 깜짝 놀랐다. 그러니 이 많은 물자들이 자기를 위해 마련되였다는것이 아닌가.

키높이 올려쌓은 지함마다에 정성껏 새겨진 단위명칭들이 또렷이 어려왔다. 구역안의 공장, 기업소, 학교들의 명칭이 전부 새겨진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였다. 《평양시당위원회》, 《평양시청년동맹위원회》라고 쪼아박은 글자도 안겨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직 려도에 첫걸음도 내딛지 못한, 그저 결심을 내렸을뿐인 자기에게 기울여지는 많은 사람들의 진정에 목이 꽉 메였다.

정말로 없는것이 없었다. 액정텔레비죤, 콤퓨터, 록화기, 랭동기, 극동기, 세탁기, 이불, 그릇세트, 계절에 따르는 옷과 신발들…

그러나 그 하나하나에 깃든 감동깊은 사연들을 리정화동무가 어찌 다 알수 있으랴.

며칠전 구역의 당, 행정일군들의 모임에서 리정화동무의 소행에 대하여 절절히 이야기해준 전금철 구역당위원장은 이렇게 말끝을 맺었다.

《우리 구역의 장한 딸을 보란듯이 내세워줍시다!》

온 구역이 끓어번졌다. 솜옷도 여러벌 있어야 한다며 엊그제 안고 나온 솜옷우에 새로 마련한 솜옷을 덧얹는 어느 한 공장의 일군이며 《정화선생이 손풍금과 기타를 잘 탄다기에…》 하며 《은방울》손풍금과 번쩍거리는 기타를 내놓는 구역인민위원회 아래단위 일군들, 섬마을학생들에게 안겨줄 학용품들을 성의껏 준비한 구역직매점 일군들과 종업원들…

그 시각 릉라소학교 교원들도 머리를 맞대고 앉아 섬의 형편을 상상해보며 저마끔 좋은 착상들을 내놓았다.

섬에는 진흙이 부족할수 있으니 색진흙을 마련해주자. 식물표본들과 가동직관물도 보내주자. 사진첩받침대와 책꽂이도 필요할것 같다.…

교원들만이 생각할수 있는 이채로운 물자들이 《릉라소학교》라는 명칭이 새겨진 지함들에 차곡차곡 채워졌다.

이런 지성을 안고 평양처녀는 려도에 첫 자욱을 찍었다.

어느날 밤 리정화동무는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 려도의 바람은 보통 드세차지 않다. 일단 용을 쓰면 아무리 장대한 체구의 사람도 허리를 꺾고서야 걸음을 내딛는다. 려도바람이 또 본때를 보이려나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울리는 전화종소리,

서둘러 전화를 받으니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동해지구에 많은 비가 내리고 센 바람이 불것이 예견되던데 지금 날씨는 어때요?》

이렇게 바람이 세찰 때면 늘 어머니처럼 왼심을 쓰군 하는 구역당위원회 녀성일군, 평양을 떠날 때에는 탄불을 보는데 필요한 집게와 갈구리까지 챙겨주도록 세심한 정을 기울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 깊은 밤에도 외진 곳에 홀로 있지 않다는 생각에 가슴이 젖어들었다.

리정화동무가 려도에서 첫봄을 맞던 때였다. 릉라소학교에서 보내온 교탁과 콤퓨터, 콤퓨터탁들이 섬마을의 학교에 도착했다.전화로 학교교원들의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는 리정화동무에게 릉라소학교 교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린 려도방어대의 학교를 릉라소학교의 분교로 생각해요.》

정말로 그랬다. 릉라소학교에서는 꾸리기사업을 할 때마다 려도방어대의 학교를 보다 훌륭히 꾸리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였다. 리정화동무네 교실이 학교적인 본보기가 될수 있도록 벽보를 비롯한 교양직관물들을 교체해주고 새 칠판을 마련해주었으며 소학반교실들의 명찰도 릉라소학교와 꼭같이 해주었다.

리정화동무가 속해있던 분과에는 교원이 5명이지만 교수문건은 늘 6부씩 준비하군 하였다. 방학기간 릉라소학교에 찾아갈 때마다 자기의 몫으로 마련해놓은 교재연구록이며 교수진도표, 교수용다매체편집물을 받아안고나면 리정화동무는 분교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음미해보군 했다.

수업시간에 섬마을학생들이 리해하기 힘들어하는 내용이 있으면 리정화동무는 선뜻 분과교원들에게 전화를 하군 했다. 그러면 분과교원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아 섬마을학생들에게 교재의 내용에 대한 생동한 표상을 주기 위한 방법론을 진지하게 토론하였다. 이렇게 때없이 열린 분과토론회가 그 얼마였던가.

수업을 함께 하는 심정으로 적극 방조해주는 분과교원들의 진정을 느낄 때마다 리정화동무는 동해안전방초소의 한 교실을 혼자 지켜가는것이 아님을 뜨겁게 새기군 하였다.

멀리 있으면 정도 식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당의 뜻을 받들어 섬방어대의 학교로 달려나간 훌륭한 처녀에 대한 대동강구역일군들과 교육자들의 사랑과 정은 해가 갈수록 더욱 뜨거워졌다.

두해전 리정화동무가 평양에 올라왔다가 구역당책임일군을 만나보지 못하고 내려간적이 있었다. 구역의 전반사업을 돌보느라 몹시 바쁜 책임일군을 대신하여 구역당일군과 릉라소학교 교장은 리정화동무에게 성의껏 식사도 차려주고 친자식을 바래워주는 심정으로 온갖 지성을 다하였다.

그런데 구역당책임일군이 그렇듯 격해할줄이야.

《정화동무가 왔댔다는걸 왜 보고하지 않았소?》

구역당일군만이 추궁을 받은것이 아니였다. 이튿날 열린 구역의 당, 행정일군들의 모임에서 릉라소학교 교장도 엄한 질책을 받았다.

《정화동무는 동무네 학교의 교원만이 아니라 온 구역의 딸이고 우리 원수님께서 아끼시는 교원혁명가요.》

당책임일군의 목소리는 준절했어도 거기에 흐르는 뜨거운 정은 일군들모두의 가슴을 후덥게 적셔주었다. 그때부터 리정화동무가 평양에 올라오면 그의 일정은 구역당책임일군에게 어김없이 보고되군 하였다.

애틋한 정을 쏟고 사려깊은 사랑을 기울여서만 어머니이던가. 자식이 바른길을 끝까지 걸어가도록 엄한 눈빛으로 채찍질해주고 따뜻한 손길로 이끌어주는것이 진정한 어머니인것이다.

그런 고마운 어머니가 리정화동무의 걸음걸음을 보살펴주고있었다.

언제인가 평양에 올라온 리정화동무는 대동강구역당위원회 일군과 함께 시내의 곳곳을 돌아보았다.

처녀의 입에서는 연방 탄성이 터져나왔다. 키돋움하며 일떠서는 고층아빠트들이며 온갖 꽃 만발한 거리들, 새로 꾸려진 공원들… 자기가 살던 문수지구며 자기가 일하던 릉라소학교는 또 얼마나 몰라보게 달라졌는가.

경탄 또 경탄, 저도 모르게 슬며시 갈마드는 부러움과 아쉬움…

외진 섬에서 어느 하루도 잊은적 없건만 올라올 때마다 더욱 떠나고싶지 않은 평양이였다.

어머니의 눈빛으로 처녀의 마음속소용돌이를 헤아려본 구역당일군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얼마전 구역청년동맹위원회 전원회의를 지도하던 구역당책임일군은 리정화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절절히 말하였다.

그는 평범한 청년동맹원이지만 당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려도방어대의 학교로 자원진출하였다. 여기에 모인 청년동맹초급일군들도 리정화동무처럼 당의 부름에 남먼저 화답해나서자.…

그 열렬한 호소에 고무된 많은 청년동맹초급일군들이 삼지연군꾸리기건설장으로 용약 달려나갔다.

그 이야기는 리정화동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에 참가하였을 때 숙소에까지 찾아와 축하해주며 구역당책임일군이 하던 말이 되새겨졌다.

《온 구역의 청년들이 정화동무를 바라보고있소.》

그 말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깨달을수록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러나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선택한 길을 흔들림없이 걸어가도록 떠밀어주는 당일군들이 더없이 고마왔다.

정녕 얼마나 많은 기대와 고무의 눈빛들이 리정화동무의 걸음걸음을 지켜주었던가.

리정화동무가 모교인 평양교원대학을 찾았을 때였다.

연혁소개실에 들어선 그는 깜짝 놀랐다. 대학의 영예를 빛내인 졸업생들의 사진속에 자기의 모습도 있었던것이다.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는 그에게 대학일군은 말하였다.

《대학을 찾으셨던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동무의 사진도 보아주시였소.》

순간 리정화동무의 심장은 터질듯 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자기를 지켜보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윽고 소학교교수방법실기실에 들어섰다. 가상수업을 하던 대학생이 가상학생들에게 《동무들, 여기에 섬방어대의 학교로 자원진출한 우리 대학졸업생인 리정화선생님이 왔습니다.》라고 소개하자 《학생》들은 《반갑습니다!》라고 합창하며 짜락짜락 박수를 쳤다.

놀라운 광경에 잠시 어리둥절했던 리정화동무는 대학일군의 권고대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리정화동무가 작별인사를 하자 또다시 《학생》들의 합창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버지원수님께 기쁨을 드려주십시오!》

리정화동무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그대로 모교의 당부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교육중시사상을 충직하게 받드는 참된 교원혁명가가 되기를 바라는 교직원, 학생들의 뜨거운 마음을 무겁게 새겨안고 리정화동무는 또다시 려도로 향하였다.

딸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이 다 그러하듯 한해두해 흐를수록 리정화동무의 부모도 사위감문제로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어느날 한 초기복무사관이 리정화동무와 나란히 집에 들어섰다. 한생 려도에 뿌리내릴 마음을 안고 초기복무사관을 배우자로 택한 막내딸의 결심은 부모를 기쁘게 하였다.

결혼식날이 다가올수록 리정화동무에게는 고민거리가 생겼다. 려도로 떠나던 날 구역당책임일군은 단단히 강조했었다. 앞으로 신랑감이 생기면 이 구역당위원장에게 꼭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결혼식은 구역에서 잘 차려주겠다고…

이제 말을 비치면 온 구역이 떠들썩할것은 뻔했다. 한번도 아니고 한해도 아닌 3년간의 무수한 날과 달에 변함없이 정을 기울여준 많은 사람들에게 또 페를 끼칠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하기로 의논하였다.

그러나 친부모보다 더 믿고 의탁해온 구역당책임일군에게 어찌 일생의 중대사를 숨길수 있으랴. 하여 바재이던 끝에 결혼식날을 눈앞에 두고 리정화동무는 일생을 같이할 김현우동무와 함께 구역당책임일군을 찾아갔다. 초기복무사관은 대뜸 합격되였지만 결혼식준비와 관련한 결심은 예견했던대로 반대에 부딪쳤다.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오!》

우려했던 일은 끝내 터지고야말았다. 구역안의 모든 단위들이 리정화동무의 결혼식준비에 떨쳐나섰다.

구역종합양복점 옥류조선옷점에서는 곧 열리게 될 전국조선옷전시회에 출품하려던 치마저고리를 선뜻 리정화동무에게 안겨주었고 어느 한 단위의 일군들은 상점들을 훑으며 제일 좋은 랭동기를 마련하였다.

어느 한 공장 초급당일군은 신랑신부에게 품을 들여 멋진 이불을 만들어줄 심산으로 옹근 이틀동안 현장에 버티고 앉아있었다. 비단천은 더 밝은 색으로 선택하고 솜은 두툼하게 넣으며 이불씌우개도 만들고 베개잇에는 곱게 장식도 해주고… 이렇듯 당일군의 끝없는 잔소리속에 마침내 화려한 비단이불이 마련되게 되였다.

구역에서 제일 이름난 식당에서 결혼상을 받아안을 때 리정화동무는 뜨거운 축복을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허리굽혀 고마움의 인사를 하였다.

그 시각 그는 지나온 3년세월을 뒤돌아보았다. 결코 외진 섬마을의 교단을 자기 혼자 지켜온것이 아니였다. 우리 당의 교육중시사상을 심장으로 받들어가는 많고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작은 교실에 언제나 함께 있었고 그들의 믿음어린 눈빛과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 한걸음한걸음을 헛디딤없이 이어올수 있었음을 그는 눈물겹게 절감하였다.

얼마전 리정화동무의 부부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집에 보금자리를 폈다. 그 집에 입사하던 날 려도방어대의 정치일군은 리정화동무에게 절절히 말하였다.

《려도에 영원히 인생의 뿌리를 내리기 바라오.》

* *

려도방어대 학교의 교원들은 이 시각도 리정화동무처럼 누가 보건말건 스스로 선택한 어려운 교육초소에 깨끗한 량심을 묵묵히 묻어가고있다.

이 땅 그 어느 두메산골, 외진 섬에도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학교가 있고 학교가 있는 곳에는 교원이 있으니 정녕 이런 훌륭한 사회주의교육제도, 애국적인 교육자들이 가꾸어가는 우리 조국의 미래는 얼마나 창창할것인가.

후대들을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한몸바쳐 받들어가는 교원혁명가들의 헌신적인 삶과 더불어, 온 나라에 세차게 일어번지는 교육중시열풍속에 교정마다에는 배움의 종소리,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더 높이 울려퍼질것이다.

본사기자 김순영

본사기자 김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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