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만고의 녀걸 김정숙》(28)

Date: 12/02/2019 | Source: Ryugyong | Read original version at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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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장 큰 공적

기운 양말에 담겨진 뜻

김일성주석님께서 회고록에 쓰신 명제로 이 제목의 글을 시작하려 한다.

《누구나 어린시절에 겪은 고생과 그 시절에 받은 사랑은 한생토록 잊지 못한다. 그 추억은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따뜻이 인생을 비쳐준다.》

주석님의 이 명제는 나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위대한 장군님의 소중한 추억의 다음 장을 펼치게 해준다.

어린시절의 몇해밖에 받지 못하셨지만 남들이 일생동안 받은것에 비할수 없게 깊고 뜨거웠던, 그래서 한생의 어느 한 순간에도 잊지 못하신 어머님의 사랑에 대한 추억 …

먼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느님이 천사에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 세가지를 가져오라고 분부하였다.

천사가 마침내 찾아낸 세가지 아름다운것이란 어린이의 티없이 맑은 웃음과 예쁘고 향기로운 장미꽃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이였다.

그런데 하느님앞에 그것들을 내놓았을 때 어린이의 웃음은 이미 로인의 주름진 얼굴로 바뀌여있었고 장미꽃은 볼품없이 시들어버린지 오래였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있는것은 어머니의 사랑뿐이였다. …

어머니는 자식에게 자기의 피와 살을 갈라주고 가슴속에 가득차있는 사랑을 통채로 기울여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존재이다.

… 해방후의 어느날 경위대원들은 어리신 장군님께서 기운 양말을 신으신것을 보고 매우 놀라와하였다.

자기들은 주석님의 사랑과 배려로 철따라 좋은 군복은 물론 여러가지 생활용품들을 공급받고있던터였기때문이였다.

그 일을 알게 되신 녀사께서는 어리신 아드님께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기운 양말을 신는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 추운 겨울에도 양말없이 맨 짚신발로 다녔다. 발이 얼어서 터지고 피가 흘렀지만 발을 감쌀 천 한쪼박도 없었다. 어머니만 그런것이 아니였다. 일제놈의 세상에서야 부자집 아이들을 내놓고는 다 그랬다. 우리 인민이 지난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것을 잘 알아야 한다. 조국이 해방되였지만 사람들은 아직 잘살지 못하고있다. 새 양말을 신은 아이들보다 기운 양말을 신은 아이들이 더 많은것을 보았지? 장군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남이 조밥을 먹을 때는 우리도 조밥을 먹고 남이 기운 양말을 신을 때에는 우리도 기운 양말을 신어야 한다. 남들이 기운 옷을 입고 기운 양말을 신을 때 새옷을 입고 새양말을 신으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다. …

내가 만나보았던 항일의 녀투사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탄생하시였을 때 밀영에 변변한 천 한쪼박, 솜 한줌 없어 자기들의 군복에서 한줌한줌 뽑아낸 솜을 모아 쪽무이포단밖에 해올리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여져온다고 한스럽게 이야기하군 하였다.

쪽무이포단, 나도 그것을 백두산밀영고향집을 방문하였을 때 보았다.

그 포단에 깃든 사연을 듣고 참으로 큰 감명을 받은 나였다.

물론 저 포단은 빨찌산투사들과 조선인민의 뜨거운 마음의 결정체여서 정말이지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진귀한 포단이다.

그러나 … 그러나 …

주석님께서 백두산밀영으로 오시여 키낮은 귀틀집의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신것은 백두광명성으로 불리우신 자제분께서 태여나신지 4달만인 1942년 6월이였다고 한다.

그때 그 쪽무이포단을 보신 주석님의 심중은 어떠했을가.

과연 총포성이 울부짖는 가렬한 전장에서 조선의 남아로 태여나신 자제분을 처음으로 품에 안으신 형언할수 없는 기쁨과 감개에만 잠기셨으랴. …

나는 녀성이고 여러 자식을 낳아 키운 어머니이며 그 후손들까지 둔 할머니이다.

녀성은 어머니가 될 때면 먼저 아기를 받아키울 요람부터 정성껏 마련한다.

어느 한 문필가는 《요람은 아버지의 애무가 있고 어머니의 젖가슴이 있고 아늑한 잠자리가 있으며 조용한 자장가가 있는 보금자리》라고 했다.

하지만 녀사께서는 귀중한 아드님에게 그런 포근한 요람을 마련해줄수 없으시였다.

포연에 절은 녀사의 군복을 뜯어만든 아기옷, 낡은 군용모포로 만든 강보, 열뽐도 되나마나한 쪽무이포단이 전부였다.

그런데 해방된 조국에서 생활하시면서도 굳이 아드님께 기운 양말을 신기시고 바지가 해지면 거기에 따붙임수를 정히 붙여 곱게 기워주시던 녀사.

그 마음을 단지 어릴적 고생은 금주고도 못산다는 격언이나 주석님의 자제일수록 더 검박해야 한다는 론리로만 리해할수 있을것인가.

당시 조선에 나와있던 쏘련군대의 쓰띠꼬브대장은 주석님께 이렇게 말씀드리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장군님, 세상에 <왕자>가 기운 옷을 입고 기운 양말을 신는것은 조선에서만 볼수 있는 경이적인 사변입니다. 자제분은 과연 김일성빨찌산의 아들답습니다. 저는 장군님과 김정숙녀사님의 빨찌산식생활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녀사와 늘 같이 생활하던 한 녀성도 어느날 밤 녀사께서 기우시는 양말이 자제분의것임을 알아보고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무렴 자제분들께 기운 양말을 신기겠습니까? 아드님께서도 남보기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새 양말을 신기십시오.》

그때 녀사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였는가.

《장군님도 인민의 장군님이고 정일이도 인민의 아들이야요. 아직 우리 인민들이 다 새 양말을 신을수 없는데 우리 아들이라고 새 양말만 신기겠어요. 정일이는 새 양말을 신은것보다 기운 양말을 신은것을 부끄러워할것이 아니라 오히려 떳떳하게 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진정한 인민의 아들이 되자면 인민들이 겪는 생활을 그대로 체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커서도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일하는 진정한 인민의 령도자가 될수 있습니다.》

《자모패자》라는 말이 있다.

자애심이 너무 많은 어머니밑에서는 오히려 도리를 모르는 불량한 자식이 나오기 쉽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귀한 자식 매로 키운다는 말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어머니의 사랑은 자기는 못 입고 못 먹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더 좋은 옷을 입히고 더 좋은 음식을 먹이고싶어하는 마음이다.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탄생하시여 일찍부터 고난에 찬 삶을 겪어오신 아드님께 좋은 옷, 좋은 음식, 유족한 생활을 갖추어드리고싶은 마음으로 말한다면 아마도 이 세상의 그 어느 어머니보다도 몇백몇천배 더 강했을 녀사이시였다.

하지만 그런 세속의 감정을 앞세우기에는 녀사께서 품고계시는 경륜이 너무도 높았다.

녀사에게 있어서 아드님은 자신만의 아드님이 되여서는 안될 몸이였다.

주석님의 숭고한 위업을 이어 조국의 아들, 민족의 아들, 인민의 참된 아들이 되여야 할 너무도 귀중한 몸이시였다.

그래서 녀사께서는 범속한 어머니의 마음으로는 정녕 줄수 없는 깊고깊은 사랑,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그 기운 양말에 담으신것이다.

녀사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도 자제분들을 앉혀놓고 한마디한마디에 천근의 무게를 담아 이렇게 이르시였다고 한다.

… 너희 아버지는 큰분이시다. 그런만큼 너희들은 더욱 겸손해야 한다. 어딜 가서나 머리를 숙이고 겸손하게 대해야 한다. …

인민들앞에서 아버지가 큰 분이라고 해서, 혁명을 했다고 해서 우쭐대서는 안된다. 사람들앞에서는 언제나 고개를 수그리고 배우자는 립장을 가져야 한다. …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99년 3월 27일, 일군들과 담화하시다가 우리 어머님은 나를 키우는데서는 매우 엄격하시였다고, 어머니의 치마자락이 자식들을 감싸준다고 하지만 우리 어머님은 나에게 절대로 눈먼사랑은 하지 않으시였다고 하시면서 지금도 나는 어린시절 나를 엄하게 교양하신 어머님의 웅심깊은 사랑을 고맙게 여기고있다고 회고하시였다고 한다.

인민과 꼭같이 생활하고 인민을 언제나 존중해야 한다는 녀사의 간곡한 당부는 어느 하루, 어느 한시도 위대한 장군님의 뇌리에서 떠난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녀사께서 돌아가신지 여러해가 지난 후에도 기운 양말이야기는 계속되게 되였다.



《오빠, 이리 줘요. 바느질은 녀자들이 하는거예요.》

《고급양복이나 고급료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체로 남자들이 하는것으로 알고있는데.》

《양말을 깁는 바느질은 양복만드는것과 달라요. 어서 이리 줘요.》

《우리 사이좋게 한짝씩 나누어 깁는것이 어떨가?》

이런 대화를 나누며 양말을 깁는 자제분들의 모습을 보시게 된 주석님께서는 가슴이 저려들어 이렇게 물으시였다.

《왜 부관더러 돈을 달래서 새 양말을 사신지 않고 꿰진 양말을 깁고있느냐?》

《인민들이 꿰진 양말을 기워신고 다니는데 제가 어떻게 새 양말만 사신겠습니까. 인민들이 다 새 양말을 신을 때에는 저도 새 양말을 사신겠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자제분들을 와락 품에 안고 얼굴을 비비며 격한 음성으로 교시하시였다.

《너희들이 수상의 아들딸들이 아니라면 크게 표창하고싶구나. 용타, 참말 용해.》



그 기운 양말에는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을 다 합쳐도 정녕 따를수 없는 녀사의 가장 뜨거운 모성애가 담겨져있었다.

조국의 한 이름있는 정론가는 이렇게 격정을 터놓았다.

《이 나라의 천만군민이 위대한 그이를 우리의 장군, 우리의 운명으로 부르며 비가 와도 따르고 눈이 와도 따르고 기뻐도 슬퍼도 못살아도 잘살아도 따르고 또 따르는것은 그이가 인민을 위해 오직 진정만을 바치시는 참다운 어버이이시기때문이다.

나의 한생을 하나로 쥐여짜면 <인민>이라는 이 두 글자가 남는다고, 인민들이 바란다면 돌우에도 꽃을 피워 인민들에게 영광을 드리고싶은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하시며 우리 장군님께서 하신 교시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준다.

<나 김정일우에 인민이 있고 김정일은 인민의 아들이다, 이것이 나의 생활신조입니다.>

이 지구상에 과연 그 누가 이런 심장의 진실을 피력할수 있겠는가.》

뜨거운 공감속에 이 정론을 읽어가는 나의 마음속에는 어린시절 장군님의 기운 양말, 기운 바지가 선히 떠오르면서 주석님의 뜻대로 인민의 참된 아들이 되기를 바라고바라신 녀사의 웅심깊은 마음이 깊이깊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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